창문을 열었을 때 공기 속에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과 함께 다가오는 희미한 꽃향기가 봄을 알린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 향기는 추위와 어둠 속에 움츠려 있던 내 마음까지도 살며시 두드려 깨우는 듯하다. 봄날은 언제나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출발과 따뜻한 위로를 선물한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지만, 늘 처음 만나는 듯 새롭다. 계절의 변화는 삶의 한 조각처럼 자연스럽지만, 봄이 품고 있는 의미는 다른 계절과 조금 다르다. 봄은 희망이고,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위로이며, 무엇보다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선물과 같다. 차가운 땅을 뚫고 올라온 작은 새싹의 초록빛을 바라보면 절망의 시간도 끝이 있고, 모든 어둠 뒤에는 반드시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어린 시절, 봄이 오면 나는 늘 학교 뒷산을 오르곤 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 향기에 웃음 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작은 정자에 도착해 있었고, 그곳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했다. 그때 내 마음속에 피어난 꿈들은 봄꽃처럼 생생했고, 싱그러웠으며, 아름다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봄을 맞는 나의 마음이 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많은 고민과 책임감을 떠안게 된 탓인지, 나는 봄이 오는 것을 예전처럼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했다. 따스한 햇살은 여전히 창문을 두드렸고, 거리에는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났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차갑고 무거웠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다시 어린 시절 걸었던 뒷산 오솔길을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오래전에 내가 좋아했던 꽃들을 다시 마주했다. 놀랍게도 꽃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봄은 변함없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봄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단지 내가 그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봄은 그렇게 늘 같은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상처 입고 지친 마음이 잠시 쉴 수 있도록 부드러운 바람을 보내주고, 한 걸음 더 내디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워낸다. 그것이 봄날이 주는 진정한 선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제 다시 봄을 기다리고, 봄을 맞이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봄날 같지는 않겠지만, 봄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삶의 힘든 순간들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믿으며 말이다. 창문을 열고 새봄의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다시금 희망을 품어 본다.